허니몬의 IT 이야기/프로그래머, '코드 엔지니어'

1.3. 교육 수료 후 취업, 이직 그리고 현재(더불어서 내가 본 업계 현황)

이 이야기는 쓰려다보니 제법 길어진다. 그래서 1,2편으로 나눈다.



  2010년 8월 중순, 교육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그리고 취업전선에 몸을 던졌다.

'난 취업 걱정을 한 적이 없다.'

  시건방진 한마디. 누군가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라며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취업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노력만 한다면 어디에서든 어떤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일을 통해서 벌어들인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일을 계속하는 것이 아닐까? 

  취업을 하지 못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그런데 한번 고민해보자. 내가 취업의 문을 두드린 기업들이 '내게 어울리는지,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인지'. 자신의 눈을 낮추면 생각보다 취업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8월 중순 교육을 마치고, 14명의 수료생들은 각자 취업활동에 나선다. 대부분 집에서 취업사이트에다가 검색이 잘되는 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올리고서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중에는 아는 지인을 통해서 면접을 이미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나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교육과정을 시작하기 전의 일(사촌형과 일을 하면서 성격을 참 많이 베렸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도 한다)도 있고 해서 내가 일하기에 적합한 곳을 찾는 것에 서두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4~5군데 이상의 면접을 보고 SW업체들의 분위기를 살피고서 결정할 생각이었다. 나도 검색이 잘되는 형식으로 취업사이트에서 정해준 양식에 따라 나에 대한 소개글을 적어 올렸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어주길 기다리는 강태공처럼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주로 연락이 오는 곳은 아웃소싱(인력파견) 을 주로 하는 소기업이 대부분이었다. 그 기업들의 대표들은 '회사 직원이 100여명은 된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ㅡ_-);; 컨테이너 한칸 정도의 사무실에서 면접을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아, 그렇군요. 정말 큰 회사군요.' 하겠다? 그 회사들에서 면접을 보면서 그들은 내 '이력서'에서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가능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연봉을 깍을 '흠'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적당히 연봉을 깍을 '흠'을 찾고나서는 '이정도면 되겠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연봉협상을 시작한다.  

'연봉 2000, 1/13으로 지급, 퇴직금 없음, 처음 3개월은 인턴과정으로 70% 지급' 

이라고 엇비슷하게 말한다.

  '썅! ㅡ_-;; 그렇게 해놓고 내 얼굴값(액면가!? Orz...)을 높게 쳐서 4000이상 받아쳐먹을라는 거 모를까봐 그러냐?' 난 코웃음 친다.

  난 나름 '자신감'도 있고 '(자)쫀심'도 있는 남자다. 일을 시작해야하니 '쫀심'은 버릴 각오도 있다. 그런데, 내가 얻을 만한 게 그리 많지가 않았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바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작은 아웃소싱 회사 들어가봐야 '경력 뻥튀기 + 빡신 프로젝트에 던져져서 빨때꼽혀서 빨리기' 만 한다. 그런 회사는 들어가서 오래 있어봐야 나만 손해다. 그 회사와의 면접이후 비슷한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들은 쳐다도 안봤다.


  그러다가 이메일로 조심스럽게 면접을 제의하는 메일이 날아왔다. 면접장소는 삼성동에 있는 무역센터 건물에 위치한 어느 사무실이었다.  '호오? 겉모냥은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품고 면접에 임했다. 이번에 면접관들은 내 '가능성'에 대해서 꽤 높은 평가를 해주었다. 개발자와는 거리가 조금 먼 '솔루션 엔지니어'가 되어보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때까지 '미투데이'를 통해서 '엔지니어 출신의 컨설턴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진로에 대한 준비를 하던 때였는지라, 제안에 홀깃했다. '리눅스, 오라클, WAS, DB'의 키워드가 접목되어 있었기에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그래서 '입사'를 결정했다. 그게 8월말즈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회사가 입사 결정하고 한달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니 난 '안전빵'으로 또다른 면접을 준비했다. 결정되어있는 입사가 있으니까 이후의 면접은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있으면 거기로 입사하면 되었으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면접에 임한 것을 회사가 알리는 없다.

  '면접에 최선을 다했다' 이니까. ㅡ_-);; 

  면접을 볼 때는 그 회사에 들어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싫음 말고. 어차피 취업못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그러다가 큰 것이 물었다.


잉카인터넷(엔프로텍트 개발사) 면접을 봤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당시에는 컸다. 안그럴리가 없잖아!?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이 '자네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때 블로그에 글을 쓰는 활동이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알게되었다. 지금도 일을 하면서 개발자들의 모임에 나가서 내 블로그를 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한켠 뿌듯함을 느낀다. 약간의 자기만족이 있어야 꾸준하게 블로거로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엔프로텍트 씨리즈를 싫어한다. ㅡ_-);; 저때 쓴 글을 보니... 참으로 겸손하게 글을 썼다. 나 답지 않다. 하지만 다 그런거지.

  CEO와의 최종면접까지 갔었다. 마지막으로 회사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고 할 때, 

  "친구들이 물어보라고 한 것도 있고, 제가 궁금하기도 해서 여쭙겠습니다. 꽤 많은 금융 사이트에 엔프로텍트의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왜 사이트마다 서로다른 버전을 설치한다고 설치를 반복하고, 설치도중에 문제발생했다며 시스템을 재부팅 시키는 겁니까?"

  라고 물었다. 당황한 면접관...

  "그럴리가 없는데? 우리는 동일한 프로그램 모듈을 사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면접은 떨어졌...다. ㅡ_-)> 처음으로 면접에서 낙방한 순간이었다. 내 실력 부족이었을거다. 

  그렇게 한달을 더 기다리며 몇군데 면접을 보면서 놀러다녔다. 읭? 그러다가 삼성동에서 면접 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을 하자'고.



오라클 협력사, System Engineer[2개월 근무] 

  2달 사이에 회사가 이사를 했다. 삼성동 무역센터 건물에 있었다가 교대 정문앞에 있는 오피스텔로 자리를 옮겨있었다. 오잉? 나중에 알고 보니 회장님의 방만한 운영으로 회사운영이 어려워졌고 비용절감의 이유로 서둘러서 사무실을 옮겼던 것이었다. 나중에는 구로 디지털단지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이전 대표의 과도한 사세 확장 및 특정 사업에 대한 의존성으로 인한 회사의 몰락

  그 회사는 제법 큰 회사였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거쳐간 회사이고 예전에는 '오라클 협력사'로 이름 좀 날렸던 것 같은데(난 정확히 모르니까) 오라클이 운영정책을 바꾸면서 자사가 많은 부분들 지원하면서 '협력사'들은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이전 대표님이 특정 기업과의 협업관계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다른 사업분야에 대한 대비가 미비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협업 기관의 요구가 무리가 되기 시작한다('단골이니까 싸게 해줘요.' 이 말은 시장에서 상인 아줌마한테만 쓰는 말은 아니다.). 거기에 IT쪽도 침체기였던 때였으니 회사에 여러모로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이제 그 회사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했다. 다양한 프로젝트 진행이 필요해진 거다.



겉모습이 그럴싸한 회사는 그 안에 들어가봐야 실상이 보인다.

  처음에 이 회사에 입사를 결정한 건, '삼성동'에 위치했고 '오라클 협력사'라고 하는 이유가 다였...다? 췟. 솔직히 그랬었다. 담당하고 있는 구역이 많았다고 했으니, 담당구역을 돌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난 '경험'에 목마르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입사를 해서 본 그 회사는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회사대표가 바뀌는 와중에 회사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기존에 일하고 있던 인사부 인력들이 대거 퇴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오라클사의 벤더 협력사들에 대한 정책이 변경되면서(대충 Sun을 인수한 직후였던 것 같다) 오라클 솔루션 유지보수도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금융업체들 몇 곳과 연결되어 소득원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삼성동에서 면접을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불과 2개월 사이에 그 회사는 급 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밑바탕에는 회사의 힘이 되는 '인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판단하고 있다. 그 회사에는 영업력과 기술력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인력들이 경쟁사나 다른 회사로 유출되는 것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만큼 회사는방만한 경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럴싸한 회사였지만 안에 들어와보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세의 기업을 직원들이 힘겹게 받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하게 떠나라.

  교대에 있던 회사가 구로에 있던 연구소를 처분하느라 짐을 열심히 날랐다. 당장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내가 젤 잘하는  것 중 하나가 힘쓰는 거다. 구로 연구소를 왔다갔다 하면서 회사가 벌였던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 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떠나야했던 사연들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오가면서 직원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새로이 진행하는 전자제품 유통기업의 내부포탈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면서, 그곳으로 교육지원을 나갔다. 우리집에서 2시간 반 가량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곳으로 5시간을 왕복하는 2주간의 교육지원. 확실히 여기서 질렸다. 최선을 다해서 교육을 준비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자바'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했다. 요즘 많은 개발자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스프링'프레임워크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끄럽기는 매한가지구나. 

  '대표 이취임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이취임식은 '삼성동 어느 강당'에서 진행이 되었다. 적자를 면치못하고 있지만 그 회사의 가장 큰 수익원인 기업의 강당이었다. 새로운 '대표 이취임식'과 함께 직원들의 승진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모인 직원들 간에 '서먹함'이 느껴졌다.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많다보니까 모여든 직원들이 서로 뻘쭘해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 회사에서 내가 있을 곳은 없어보였다. 아는 형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고 팀장님에게는 일이 정리되는 대로 퇴사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들어온지 얼마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이 나가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당황하시는 듯 했지만 이야기를 몇번 나누시고는 '그러라'고 하신다. 그렇게 2달 정도의 회사생활이 끝나고 바로 다른 회사에 취업이 된다. 한 일주일 정도 여유를 가졌다가 일하려고 했는데, 그 회사에서 당장 일하자며 나오란다. 

당장 나를 투입시킬 만한 곳을 찾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