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공공기관 유지보수(SM, System Maintainence) [1년 근무] |
그렇게 아는 형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황급히 나를 광화문에 위치한 행안부 유지보수 업무에 투입한다. 담당하는 업무는 DW(Data Warehouse : 대용량의 데이터를 ETL[http://en.wikipedia.org/wiki/Extract,_transform,_load]방식으로
추출/변환/적재 하여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데이터를 가공하여 보여주기 위한 대용량 저장소)였다. 기획의도
자체야 나쁘지 않지만, 대부분의 문서나 데이터정리 작업을 엑셀과 파워포인트로 하는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지금이야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꽤 많은 기술인력이 요구되고 있는 분야이다. 그 회사를 나와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에 DW경험이 있는 인력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을 정도니까.
행정기관 유지보수 업무는 기본적으로 8시 30분에 시작(고객:공무원 보다 먼저 출근해서 업무준비를 해야하니까)해서 6시에 끝난다. DW쪽으로 고객의 전화는 거의 없었다. 군대에서 ‘땡보’라고 하는 보직같달까? 처음에는 Oracle Database의 데이터를 ETL 툴을 이용하여 Sybase DW DB에 적재하는 업무지만 프로시저와 배치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동으로 데이터가 적재되어서 손도 많이 안갔다. 가끔 데이터가 깨지는 경우[정해진 테이블 형식에 맞지 않는 데이터가 들어오는 경우 그랬는데, 입력폼에서 검증절차만 잘 거쳐주면 좋았을텐데...]만 적절하게 조치를 해주면 되었다. 지루한 업무의 반복이었다. 책을 이용해서 공부를 했지만 뭔가 부족함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적거리면서 스터디 그룹을 찾아 헤맸다.
1.3.1.1. 스터디 참가 |
그러다가 봄싹(http://springsprout.org)
스터디
그룹을 찾았다. 지금도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스터디를 진행하는 개발자들의 모임이다. 처음에는 로드 존슨의 J2EE에 대한 스터디를 2주간격으로 진행했는데 초반에는 열심히 참가했다. 그러다가 게을러져서는… 한동안 모임에 안나갔다. 몇번 빠지게 되니 나가기 귀찮아하는 그런 게 생겼다. 지금도 자바스크립트
스터디에 참가한다고 해놓고, 첫날에 참가를 하지 않으니 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째 이런…
또 다른 스터디가 생긴다면 그 때 다시 얼굴을 들이밀도록 하자. ^^ 봄싹 화이팅~~ 지금 새로운 스터디가 진행될 예정인데 가능하면 그 스터디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실력을 키우고 싶은 욕심은 참 큰데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부족하다.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이 '개발자로서 오래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1.3.1.2. 세미나 참가 |
지금도 주말에 하는 세미나가 있으면 꼭 참석하려고 한다. ‘세미나’가 있는 곳에 ‘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으니까... 앞으로도 좋은 세미나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얼굴을 들이밀어서 이런 법칙이 유지되도록 하겠다. +_+)
이런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월차를 활용할 수가 있어서, 평일에 세미나가 있는 날에 참가하고는
했다. 무료 세미나도 있었지만 유료 세미나도 있었다. 회사에서
이런 세미나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기에 스스로 열심히 찾아다녔다.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회사는 새로운 기술 교육에 대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바만 하던 사람에게 아이폰 앱을 개발하라고 시키면서
그에 대한 기기(맥북프로나 맥북미니 등의 Mac OS를 기반으로
하는 기기를 사주지도 않고)에 대한 지원도 없고 교육에 대한 지원(교육기관에서
받는 교육비를 지원해주지 못한다해도 도서구매 비용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도 전혀 없었다. 그 회사는 더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맥을 통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1.3.1.3. 반복되는 무료한 업무, 불필요한 문서 작성, 배울게 없다고 느낌 |
그 곳에서 있는 1년 동안 참 불필요한 일을 많이 했다. 매 분기마다 업무보고를 위해서 수백장이 넘는 요구분석서 및 업무수행서를 내야했고, 매주마다 업무일지, 매달마다 업무일지를 의무적으로 써야했다.
그렇게 6개월쯤 되어갈 때인가?
행정법규가 변경되면서 생기는 변동사항에 대한 프로그램 개발요구사항이 생겨서 이쪽 개발에 투입되었다.
자바는 JDK1.4, 오라클 DB와 트러스트폼
이라고 하는 화면구성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업무개발을 하는 것이었다. 트러스트폼은 화면구성을 XHTML형태로 변경하여 구성해주는 툴이었다. 이 개발을 할 때는 초반에
조금 타이트하게 진행하고 후반부에서는 테스트를 하면서 수정해가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 때도 초반에
실수가 참 많았다. 트러스트폼이 자체적으로 구현해주는 효과와는 달리 Javascript의
일부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에, 구현하려고 했던 기능들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시행착오도 참 많았다. 이런
시행착오를 사전에 알려줄만한 사람들이 그 센터에 없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독학을 해서 배우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 사업이 일정에 맞춰 잘 마무리 됨과 동시에 새로운 ‘변동비(용) (지출)사업’이 진행되면서 거기에 투입되었다. 기존에 델파이(Delphi)로 되어있던 시스템(C/S, Clinet && Server)을 자바기반으로 변경하는 업무였다. 당시에
유지보수의 잉여인력(나도 거기에 포함)들이 투입되었고 외부에서
프리(자유 계약직 개발자)들을 모셔와서 계약을 하여 개발업무를
진행했다.
이 사업도 참 엉터리였다. 델파이를
만져본 적도 없는 개발자들에게 소스분석과 델파이에 대한 이해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개발일정이 산정되었다. 델파이
소스를 분석하면서 바로바로 자바 코드로 전환하는 작업을 병행해야했다. 거기에 새로 합류하신 분들은 트러스트폼도
써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델파이 코드에 대한 이해와 트러스트폼에 대한 이해의 이중 압박에 시달려야했다. 투입된 비용에 비해서 전체적인 업무 전환비용이 만만치 않은 사업이었다. 4개월로 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이 아니었다(경력 1년도 안된 내가 봐도 그런걸 알겠는데, 사업관리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보다. 그 사업은 오히려 일정을 줄이면서 진행의 압박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센터에서 지낸 경험이 전혀 없는 외부 인력’이 투입되었다. S사에서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SI개발팀장을 시킨다던가… 하는 소문이 스르륵 흘러나왔다. 그런 소문에 걸맞게 그 분은 참 안타까웠다. 마지막에 그곳을 나올
때는 내 뒤통수를 제대로 때려주는 멋진 사람이기도 했다. ㅡ_-);
앞으로도 S사에 대한 안좋은 추억은 깊이 새겨져있을 듯 하다.
프로젝트는 정말 힘겹게 진행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월화수목금금금’을 경험했다. 워낙 개발분량이 많다보니 개발하고하고하고하고
해도 전혀 분량이 줄지 않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몸도 마음도 피곤했던 탓에 이 때 개발된 소스는 참
‘부끄럽다’. 테스트를 한다고 했지만 내가 하는 테스트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화면만 보이게 만들고 튀는 거 아냐?’라는 이야기… 프리분들도 일정만 채우고 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마음을 슬슬 품기 시작했다. 수정된 개발본수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은 했지만 거기에는 내 능력의 한계가 분명히 보였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것이라면
‘기능하는 것’과 ‘기능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명확했다는 정도랄까? 별걸 위안 삼았다(지금도 참 부끄럽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해서 나중에라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마칠 수 있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와서, 그 프로젝트를 끝까지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나마 지헌씨가 짠 코드는 나았다.’ 라며 위로해줬다. 흑… Orz…
1.3.1.4. 배울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떠나야 할 때 |
프로젝트를 하면서 3개월정도를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휑해졌다. 다시 ‘까칠한 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할때면 주변에 연락을 차단하고 ‘은폐’형으로 돌입하는 나로서는 뭔가 ‘답답한’ 구석이 많았다. 프로젝트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해도 ‘팀장’ 선에서 커트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건방지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일정을 맞출 수 없습니다.’ 라고 팀장에게 이야기 했다. 하지만 팀장은 ‘맞춰주세요.’ 라고만 할 뿐이었다. 새로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피곤한’ 프로젝트에 팀장을 맞게 된 것은 참 안스럽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순하고 인간성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개발자’들의 의견을 조율해주는 조율자 역할을 자처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이 좋은 게 아니라 무능하기
때문에 사람좋은 척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회사에는 이 프로젝트를 마치는 것과 함께 회사를 나가겠다는
보고를 했다. 회사 몇몇 분들이 회유를 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확고하게 정해져있는 상태였다. 그 때 프로젝트 ‘팀장’이 한달만 더 일해달라고 부탁을 한 상태였다. 그래서 회사에
이야기를 해서 ‘그렇게 하자’라고 대답을 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그 ‘인간성 좋은 척’하는 팀장에게 ‘뒷통수’를 호되게 맞았다.
‘까칠한 나’가 나타나서 ‘저는 신정에 일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모두 앞에서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니 망설이던 사람들도 ‘나오지 않겠다’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내가 좀 못됐다. 그렇게 분위기가 흘러가자 사람들을 모두 해산시키고 ‘팀장’은 나를 따로 불렀다.
“지헌씨, 한달 더 연장근무하기로 이야기 했던게 사업지원부에서 통과가 안되었어요.”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잠시 멍한 상태로 자리로 돌아왔다. 사람들에게
“저 짤렸어요.” 라고 이야기하자 분위기가 웅성웅성해졌다. 팀장이
한달을 연장하자는 확답을 받은 식으로 이야기가 되었는데 알고보니, 그건 팀장 개인의 생각이었을 뿐 ‘사업단’에서 정해진 것은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거론 된 적도 없었단다.
“후우… 어이없네.”
팀원들과 나와서 커피한잔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그냥 깔끔하게
정리하고 자리를 뜨는 게 맞는 듯 했다. 짐을 정리하러 신정에 나왔을 때에는 ‘S사’ 직원들과 프리 1명이 나와서 개발하고 있었다. 그
분들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움의 눈물이 ‘마음 속’으로 흘렀다. 어쨌든 난 그곳을 떠났다. 지금도 간혹 그곳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다지 좋은 이야기들은 없었다.
다시는 그 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 10년 넘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그 곳은 분위기가 참 묘해졌다. 그리고 크고 작은 일들이 터지고 나서 내부의 규칙이 참 엄격해졌다. 인력관리도 엄격해졌다. 그런 곳에서 돌아가는 규칙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곳에 계속 머물겠지만 나는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지금도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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